2023년08월13일 31번
[과목 구분 없음] 밑줄 그은 '사절단'으로 옳은 것은? [2점]

- ① 보빙사
- ② 수신사
- ③ 영선사
- ④ 조사 시찰단
(정답률: 56%)
문제 해설
정답> ①
'이 그림은 1883년 미국 신문에 실린 삽화입니다'는 내용이 나와 있다. 이어 '푸트 미국 공사의 조선 부임에 대한 답례로 파견된 민영익 등의 사절단이 아서 대통령*을 만나는 상황을 표현하였습니다'는 내용이 나와 있다. 이를 통해 주어진 자료에서 밑줄 그은 '사절단'은 보빙사를 가리킨다. 상술하면, 미국이 조미 수호 통상 조약 체결 후 푸트 공사(1826~1913)를 파견하였다(1883.4, 고종 20). 그리고 이에 대한 답례로 고종은 1883년(고종 20) 7월에 보빙사를 미국에 파견하였다(~1884.5). 참고로 조미 수호 통상 조약은 1882년 5월에 체결되었으며, 푸트 공사는 이듬해인 1884년 7월에 미국 정부가 조선 주재 전권 공사를 변리 공사 겸 총영사로 강등시키자 사임하였다.
*아서 대통령: 체스터 앨런 아서 미국 제21대 대통령(재임 1881-1885)을 가리킨다. 보빙사는 미국 뉴욕에서 아서 대통령을 접견하였다. 이어 보스턴 만국 박람회를 참관하고, 병원, 전신 회사, 우체국 등도 시찰하였다.
오답 해설>
② 수신사는 1876년에 체결된 조일 수호 조규(강화도 조약) 이후부터 주일 조선 공사가 파견되기 전까지 일본에 파견된 사절단이다. 1876년, 1880년, 1882년 이렇게 총 3차례 파견되었다.
③ 영선사는 중국의 선진 문물(신식 무기의 제조와 사용법)을 견학하고 미국과의 수교 문제 등을 사전 조율하기 위해 청에 파견된 사절단이다. 온건 개화파인 운양 김윤식(1835~1922)이 이끌었다(1881.9~1882.11). 이듬해 6월에 발발한 임오군란의 여파로 조기 귀국하였으나 이를 계기로 기기창(근대적 무기 제조 공장)이 설립되었다(1883.3).
④ 조사 시찰단은 일본의 근대 문물을 배워 오기 위해 파견된 사절단이다(1881.4~윤7). 위정척사론에 바탕을 둔 반대 여론이 심하여 암행어사 형식으로 '비밀리에' 파견하였다. 이들은 일본의 정부 각 부처 및 육군, 세관, 포병 공창, 산업 시설, 도서관, 박물관 등을 조사하였고, 귀국 후 국내에 개화 여론을 확대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.
'이 그림은 1883년 미국 신문에 실린 삽화입니다'는 내용이 나와 있다. 이어 '푸트 미국 공사의 조선 부임에 대한 답례로 파견된 민영익 등의 사절단이 아서 대통령*을 만나는 상황을 표현하였습니다'는 내용이 나와 있다. 이를 통해 주어진 자료에서 밑줄 그은 '사절단'은 보빙사를 가리킨다. 상술하면, 미국이 조미 수호 통상 조약 체결 후 푸트 공사(1826~1913)를 파견하였다(1883.4, 고종 20). 그리고 이에 대한 답례로 고종은 1883년(고종 20) 7월에 보빙사를 미국에 파견하였다(~1884.5). 참고로 조미 수호 통상 조약은 1882년 5월에 체결되었으며, 푸트 공사는 이듬해인 1884년 7월에 미국 정부가 조선 주재 전권 공사를 변리 공사 겸 총영사로 강등시키자 사임하였다.
*아서 대통령: 체스터 앨런 아서 미국 제21대 대통령(재임 1881-1885)을 가리킨다. 보빙사는 미국 뉴욕에서 아서 대통령을 접견하였다. 이어 보스턴 만국 박람회를 참관하고, 병원, 전신 회사, 우체국 등도 시찰하였다.
오답 해설>
② 수신사는 1876년에 체결된 조일 수호 조규(강화도 조약) 이후부터 주일 조선 공사가 파견되기 전까지 일본에 파견된 사절단이다. 1876년, 1880년, 1882년 이렇게 총 3차례 파견되었다.
③ 영선사는 중국의 선진 문물(신식 무기의 제조와 사용법)을 견학하고 미국과의 수교 문제 등을 사전 조율하기 위해 청에 파견된 사절단이다. 온건 개화파인 운양 김윤식(1835~1922)이 이끌었다(1881.9~1882.11). 이듬해 6월에 발발한 임오군란의 여파로 조기 귀국하였으나 이를 계기로 기기창(근대적 무기 제조 공장)이 설립되었다(1883.3).
④ 조사 시찰단은 일본의 근대 문물을 배워 오기 위해 파견된 사절단이다(1881.4~윤7). 위정척사론에 바탕을 둔 반대 여론이 심하여 암행어사 형식으로 '비밀리에' 파견하였다. 이들은 일본의 정부 각 부처 및 육군, 세관, 포병 공창, 산업 시설, 도서관, 박물관 등을 조사하였고, 귀국 후 국내에 개화 여론을 확대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.